声明文(KR)

박유하 교수 기소에 대한 항의성명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인 박유하 교수를 서울 동부검찰청이 「명예훼손죄」로 기소한 것에 대해 우리들은 커다란 놀라움과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작년 11월 일본에서도 간행된 『제국의 위안부』에는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면적인 인식을 넘어 다양성을 제시함으로써, 사태의 복잡성과 배경의 깊이를 포착하여 진정한 해결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기소와 동시에 발표된 보도자료에 의하면, 검찰청은 본서의 한국어판이 「허위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박유하 교수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선입견과 오해에 의거하여 내린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으로 인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경험한 슬픔의 깊이와 복잡함이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일본의 독자들에게도 전해졌다고 느끼는 바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민이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제국일본의 책임을 어디까지 추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이해에 도달함으로써 비로소 해결이 가능해지는 문제입니다. 이에 관하여, 박유하 교수는 「제국주의에 의한 여성멸시」와 「식민지지배가 초래한 차별」의 두 측면을 파고들어 이제까지의 논의에 깊이를 더하였습니다.
위안부가 전쟁터에서 일본군 병사와 감정을 공유하는 경우가 있었다거나 모집에 관여한 조선인을 포함한 업자의 책임 등을 이 책이 지적한 데 대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식민지지배를 통해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낸 제국일본의 근원적인 책임을 날카롭게 지적했을 뿐이며, 위안부문제로부터 등을 돌리고자 하는 일본의 일부 논조에 가담하는 책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여러 이견들을 포함해서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환기시킨 점에서도 본서의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소에 관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박유하 교수의 「잘못」의 근거로서 「고노담화」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고노담화를 섬세하게 읽어내고 이를 높이 평가하면서, 담화를 기반으로 한 문제해결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일본어판은 올해 가을 일본에서 「아시아태평양상」특별상과 「이시바시 탄잔기념 와세다저널리즘대상」을 잇달아 수상하였습니다. 이는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논의의 심화를 향해 새로운 한발을 내딛은 것이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한국에서 이 책이 명예훼손의 민사재판에 휘말리게 된 것에 대해 우리는 우려의 눈길을 보내왔습니다만, 이번에 더욱 큰 충격을 받게 된 것은 검찰청이라는 공권력이 특정 역사관을 기반으로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사실로 인정하고,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학문의 자유에 관한 문제입니다. 특정 개인에 대한 비방이나 폭력선동을 제외하고, 언론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대항해야 하며, 학문의 장에 공권력이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라고 여겨집니다. 학문과 언론의 활발한 전개야말로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한 중요한 재료를 제공하고, 사회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정치행위뿐만 아니라 학문과 언론이 권력에 의해 삼엄하게 통제되었던 독재시대를 헤쳐 나와 자력으로 민주화를 달성하고 정착시킨, 세계에서 보기 드문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한국사회의 저력에 깊은 경의를 품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헌법이 명기하고 있는 「언론・출판의 자유」나 「학문・예술의 자유」가 침해 받고 있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한일양국이 이제 겨우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는 때에 이번 기소가 양국민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여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번 기소를 계기로 한국의 건전한 여론이 다시금 움직여지기를 강하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민주주의도 현재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만,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가 공명해 감으로써 서로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로운 논의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영구히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번 기소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상식과 양식에 부끄럽지 않은 판단을 법원에 강하게 요구함과 동시에 양국의 언론 공간을 통한 논의의 활성화를 절실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2015년 11월 26일

성명인 일동